소설 아이돌리쉬 세븐
아이나나 학원
소설 : 사사키 테이코
캐릭터 원안 · 일러스트 : 타네무라 아리나
원작 : 반다이남코 온라인
캄캄한 어둠 속에 환상의 꽃이 피어있다.
그 꽃은 먹으로 칠한 듯한 칠흑의 벽에 비친 디지털 아트다. 아무 것도 없었던 공간에 확, 하고 에메랄드 그린의 빛이 한 점 떠오른다. 빛나는 새싹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자라나서, 잎이 우거지고, 그 끝에는 달빛과도 같이 덧없는 색조의 꽃망울이 일곱 개 정도 부풀어오른다. 봉우리는 부풀수록 각자 다른 색을 머금어, 퐁, 하고 보드라운 꽃잎을 피워냈다.
이곳은 WEB 통신 방송을 녹화하는 스튜디오.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은 지금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이돌리쉬 세븐(IDOLiSH7)의 멤버들이다. 그들은 미니드라마 『아이나나 학원』의 최종화를 녹화하는 중이었다. 『아이나나 학원』은 학원을 지배하려는 야마토가 소고와 이오리를 끌어들여 나기, 리쿠, 타마키와 대결하는 드라마다.
밝은 조명이 일제히 점등한다. 카메라 스탭은 스탠바이 중이다. 촬영 개시 신호와 함께, 조명 탓에 희미해진 디지털 아트의 꽃을 배경으로 하얀 쵸란(長ラン)에 선홍빛 어깨끈을 맨 응원단장 차림의 나나세 리쿠가 외쳤다.
「나는 어둠이 싫어! 너희들의 어둠이 싫어! 그러니까 나의 사랑의 힘으로 모든 증오를 전부 불태워주겠어!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아」
정직하게 뻗어나가는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퍼졌다. 그 순간, 스튜디오에 평온한 분위기가 만연해진다. 리쿠의 또랑또랑하게 기합이 들어간 말씨와 올곧은 눈빛에서는 증오라는 감정의 조각조차 읽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는 아기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 있다. 리쿠와 대치하고 있는, 망토를 두른 흡혈귀 역의 오오사카 소고와 흰 가운을 걸친 보건 교사 역할의 니카이도 야마토가 몸에서 힘을 뺐다.
「……미안, 리쿠. 나, 도저히 리쿠에게 미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엄청나게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걸」
야마토가 가슴께에 걸어두었던 청진기를 손가락으로 휘릭 돌려 가지고 놀며 말했다.
「에」
「좀 더 증오스럽다는 듯이 말해주지 않으면 형아, 감이 안 올 지도」
「에…… 엣」
리쿠의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츠바 타마키가 웃어버렸다. 비웃음을 당한 리쿠는 멍하니 타마키를 바라봤다. 현역 고등학생인 타마키가 교복을 부러 흐트러지게 입고 있는 모습은 무척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리쿠가 뒤를 돌아보자 타마키는 다시 스위치가 들어간 듯 본격적으로 껄껄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즈미 이오리는 그 옆에서 벌레라도 씹어먹은 듯한 표정으로 서있다. 그는 셔츠의 단추를 맨 위까지 채운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의상 소품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안경의 브릿지를 손끝으로 치켜올리며 이오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감독은 「컷」이라는 말이 없다. 즉, 촬영은 계속 되고 있다는 뜻이다.
「요, 용서하지 않아!!」
헉 하고 놀란 리쿠가 다짐하듯 야마토와 소고를 향해 한 번 더 대사를 외쳤다. 리쿠와 야마토 일행 사이 딱 한가운데에서 줄에 묶여 앉아있던 에이프런 차림의 이즈미 미츠키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리쿠를 지켜보고 있다. 그 곁에는 사이리움을 손에 들고 있는 하피 차림의 로쿠야 나기가 있었다. 쪼그려앉아 미츠키의 줄을 풀어준 나기가 몸을 일으킨다.
「OH! 리쿠. 우리들에게 증오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가 어둠의 지배자라고 해도. 우리들의 무기는 언제나 증오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리쿠, 그러니까──」
나기가 미소와 함께 그리 외쳤다. 금발에 푸른 눈. 북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나기는 누구나가 시선을 빼앗길 만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노래하죠」
「에에!? 노래!?」
리쿠가 큼직한 눈을 꿈뻑였다.
「네. 왜냐하면 저희들은 IDOLiSH7이니까요. 컴온, 뮤직!!」
딱, 하고 나기가 손가락을 튕겼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니드라마를 연기하고 있는 그들의 뒤로 디자인 아트의 화원이 떠오르면서 제각기 꽃봉우리를 피워냈다.
「……들은 적 없어. 이런 거」
리쿠는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리쿠 뿐만이 아니라 나기 외의 모두가 여기서 노래할 줄은 몰랐던 듯 하다.
가장 먼저 확 뛰쳐나온 것은 미츠키였다. 카메라의 앞, 딱 좋은 위치에서 손을 치켜들곤,
「사람 수 만큼 마이크, 있어?」
라며 스태프들에게 손짓발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스태프가 금방 준비해온 마이크를 멤버들은 하나씩 손에 쥔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인트로가 끝나고 리쿠의 노랫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진다. 압도적인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의 노랫소리가 스튜디오 전체를 감싸안았다. 처음엔 조금 얼떨떨했던 듯 했지만 노래하기 시작하면 리쿠는 더이상 헤매지 않는다. 어둠을 몰아내는 듯한 반짝이는 노랫소리가 터져나오자 나기가 「굿잡」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웃어준 뒤 차례를 마쳤다.
소고가 새까만 망토를 나부끼며 신중한 스텝을 밟는다. 미츠키가 스태프들을 부채질하듯, 음악에 맞춰 작은 체구로 점프했다. 타마키의 다이나믹한 댄스에 모두의 시선이 끌려들어갔다. 야마토는 타마키의 댄스를 힐끔 바라보면서 기분 나쁘게 웃어보인다. 청진기를 휙휙 휘두르며 유유히 노래하는 야마토의 모습은 「그러고보니 이건 미니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지」라는 걸 바로 알 수 있게끔 해주었다. 교섭이라도 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야마토는 리쿠와 나기를 위협했다. 이오리는 바로 야마토의 연기에 대응하여 리쿠를 보호하듯 야마토의 앞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즉석에서 나온 애드리브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야마토는 여유롭게 웃으며 바로 뒤로 빠졌다.
감독의 「컷」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스튜디오는, IDOLiSH7의 색으로 물들었다.
IDOLiSH7에게 WEB 통신 방송 출연 의뢰가 온 것은 2개월 전이었다.
소속되어있는 예능사무소── 타카나시 프로덕션의 매니저, 타카나시 츠무기에게서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멤버는 이오리다. 이오리는 아이돌이지만 자신의 분석능력을 발휘하여 츠무기를 돕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오리가 츠무기의 브레인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모두에게는 비밀이다. 현역 고등학생이자 IDOLiSH7 내에서는 가장 어린 자신의 지휘로 그룹의 방침을 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멤버도 있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WEB 통신 방송입니까……」
「네엣」
IDOLiSH7은 아이돌로서는 갓 움튼 새싹이다.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에너지를 품은, 절대적인 「진정한 아이돌」이지만 일반인들 사이로의 침투율은 아직 낮다. 어째서 아직도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인가, 이오리는 그 이유를 명백히 알고 있다. 노출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래와 댄스를 듣고 봐준다면 팬이 된다. 그만한 실력과 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신인 아이돌 그룹인 IDOLiSH7을 불러주는 TV 방송국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TV가 아닌 인터넷을 경유하는 WEB 통신의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냐는 의뢰가 사무소에 도착했다.
「그렇네요. 이거라면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뢰 내용을 체크한 이오리가 말했다. 그에 츠무기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에? 그런가요? 하지만 전에, WEB 통신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서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었죠?」
IDOLiSH7의 이후 전개에 대해 대화했을 때, 이오리가 말했던 한 마디를 츠무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 말씀드렸었죠. 저희는 인터넷 방송으로 주목을 받았던 아이돌 그룹입니다. 그러니 WEB 통신과 궁합이 좋다는 판단은 옳아요. 옳습니다만……」
IDOLiSH7은 어떤 사고로 인해 부득이하게 태풍이 부는 야외에서 노래하게 되었는데, 그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사람들의 주목을 모았었다. 인터넷 시대의 아이돌. SNS에서 좋아요!나 마음에 들어요 표시를 받으며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동영상. 기업의 광고 없이 유통되어 왜곡 없이 오롯이 드러난 IDOLiSH7이라는 그룹의 반짝임. 그건 자신들의 무기 중 하나라고 이오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입장은 아주 조금의 밸런스로 뒤바뀔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반면에 WEB 통신 방송에 과하게 의존하면 그런 색이 입혀져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구태어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싸구려 아이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싸구려…… 아이돌…… 인가요?」
「네. 정도가 정말로 미묘합니다만……. 한 번 삐끗하면 싸구려 아이돌로 전락해버릴 거예요. 지금은 누구든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일반 아마추어 분들이 동영상을 올려서 인기를 얻고 기업과 콜라보를 맺으며 덤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그 틈에 프로 아이돌인 저희가 나서는 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노출이 늘어나서 좋은 게 아니죠」
츠무기는 풀이 죽은 얼굴로 듣고 있었다. 이오리는 츠무기의 매니지먼트에 대해 화를 내려고 했던 게 아님에도 가끔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들어버렸다. 조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IDOLiSH7의 노래도 댄스도 싸구려 같은 게 아냐. 진짜예요. 진짜 아이돌이에요. 저는 그걸 알고 있으니까. 봐주시면 다들 분명 알아주실 거라고 믿어요!」
기가 죽은 것처럼 보였던 츠무기였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금방 커다란 눈동자를 촉촉히 적시며 이오리를 향해 그렇게 단언했다. 이오리는 숨을 삼켰다. 이런 걸 계산하지 않고 강아지 같은 얼굴로 말해버리니까── 매니저는, 무섭다.
「물론입니다」
즉답한다. 이오리 자신도 IDOLiSH7이 진짜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앞서 달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 TRIGGER<트리거>는 버라이어티에는 강하지 않다. 그러니 TRIGGER가 잘 하지 못하는 분야의 틈을 노리는 건 충분히 좋은 전략이다. 게다가──.
「이번에 받아들인 WEB 통신 방송 건은 지금 단계에서는 예산이 여러모로 빡빡한 것 같습니다만, 그런 만큼 상당히 예리하게 공략해가고 있는 모양이네요. 촬영편집을 담당하시는 분은 프리랜서 분이신 듯 합니다만……」
기획자를 훑어보며 기획의 내용과 함께 스태프의 이름도 체크한다. 촬영 관계자 중 한 명의 이름을 이오리는 이전, 인터넷의 인터뷰 기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신진기예의 디지털 아트 집단 Y-클래식의 멤버가 『최근 신경쓰이는 사람이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이름을 거론했던 사람이다. 취미로 만들고 있는 영상의 센스가 굉장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명해져 아트 업계 일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가 만든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소재와 보여주는 방식이 빼어나 영상미가 좋은 데다가 템포도 빠르고 마무리로 웃음을 주기까지, 인기를 얻은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이런 신선한 인재를 찾아내 권유해서 등용한 방송이라면── 저희 일을 맡겨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츠무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몰랐어요. 그런 분께서 스태프진에 계셨다니」 라고, 중얼거렸다.
「저희가 갖고 있는 최대의 무기는 나나세 씨의 노래입니다. 노래를 들려드리고 춤을 보여드리면 저희들이 진짜라는 건 반드시 상대방에게 전해져요. 마지막에 노래와 댄스를 보여드릴 수 있는 코너도 만들어주셨고, 이번 기획자 분을 주축으로 한다는 듯한 『아이나나 학원』이라는 미니 드라마도 이 스태프진이라면 분명 팔릴만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은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같네요」
「넷. 그럼 이 일은 받아들일게요!!」
츠무기는 날아갈 듯이 기운찬 목소리로 응했다.
5일 뒤, 드라마 대본이 사무소에 도착했다. IDOLiSH7 전원이 출연하는 일이다. 이미 MEZZO"<멧조>라는 이름으로 그룹 내에서 2인조로 묶여 먼저 CD를 낸 타마키와 소고는 이번 일로 인해 업무량이 더욱 많아졌다. 부담이 커지겠지만 그래도 MEZZO"의 두 사람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애초에 타마키도 소고도 MEZZO"만을 해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IDOLiSH7의 일곱 명으로 데뷔하기 위해 앞장서서 길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허울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니저는 IDOLiSH7의 매니지먼트와 영업에 힘을 써줬으면 한다면서, MEZZO"는 두 사람끼리 움직이는 일이 많았다. 약소 사무소 소속인데다가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이다. 아직 두 사람 전용인 자동차 같은 건 살 수가 없어서 MEZZO"의 이동수단은 전차였다. 일단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아이돌 스위치를 꺼둔 채 움직인다. 그래도 눈치 챌 사람들은 눈치채지만, 억지로 이야기를 걸어온다거나 소란이 일어나 곤란했던 적은 아직 없다. 그건 그것대로 타마키가 「아직 멀었구만」하고 실망하는 원인이긴 했지만.
타마키는 행방불명된 여동생을 찾고 싶어서 노출이 많은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아직 남들은 그걸 모르지만, 늘 좀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TV에도 잔뜩 나오고 싶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여동생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타마키는 소고와 함께 전차에 타고 있었다. 빈 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세간에야 MEZZO"의 두 사람은 엄청나게 사이가 좋다고 알려져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타마키 군, 대본 제대로 읽었어?」
소고가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동 시간조차 아껴서 암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고다. 성실한 사람인 거다. '오늘 해야할 일은 오늘 내에 끝내야 해' 파의 인간. 반대로 타마키는 '오늘 해야할 일은 내일 하고 싶어' 파였다. 불성실한 건 아니다. 늘 눈앞의 일에 전력을 다하는 그는 지금 가장 가까운 바로 다음 일에만 의식이 쏠려있었다.
「나중에 할게」
불퉁하게 그리 대답해버린다. 소고가 아주 잠깐 눈꼬리를 내렸다. 몇 번째 반복하는 건지 모르겠다. 비슷한 일을 두 사람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왔다. 소고의 말투는 무척 상냥하고 부드러운 톤이다. 따스한 봄의 햇살같은 폭신한 분위기로, 실제로도 소고는 기본적으로는 늘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고는, 가끔 타마키 만큼은 엄하게 교육적으로 지도했다. 타마키는 그게 불만이었다.
「우리 일곱 명이서 하는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겠다고 처음에 이 일이 들어왔을 때 둘이서 얘기했었지. 녹화는 내일모레야. 따로 찍으면 자연스럽지 못할 테니까 되도록이면 다들 모이는 날에 찍고 싶어」
늘 이런 식이다. 타마키는 소고에게 설교당하기만 한다.
「응」
「우리 스케줄에 맞춰서 스탭 분들이 급하게 스튜디오를 잡아주셨어. 다들 급하게 한 화 분의 대사를 외워야한다고 숙소에서도 각자 연습하고 있고」
「소쨩, 밋키한테 듣고 뭔가 큰소리 냈었지」
이건 학원물 미니드라마다. 소고의 역할은 열혈 교사였다. 열혈이란 뭘까 하는 부분에서 고민하던 소고가 미츠키에게 여러가지를 상담했다는 건 알고 있다. 미츠키의 충고대로 소고는 자고 있는 야마토를 큰소리로 깨워 조깅에 데려가거나, 『마법소녀 매지컬★코코나』를 향한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나기의 말을 큰소리로 끊고 스케줄을 확인한 뒤 「다음 일을 위해 열량을 비축해두고 싶으니, 함께 「매지★코나」를 보게 해주세요. 참고로 삼겠습니다」라고 부탁하거나 했다. 나기는 부탁받지 않아도 「코코나의 근사함」에 대해 늘 포교활동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고는 「코코나 사랑」을 성토하는 나기의 앞에 정좌한 채 진지한 얼굴로 「무척 공부가 되네요」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거 공부였어?」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니 소고가 곤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연습이었어」
「시끄러웠어」
「……읏」
「어젯밤은 소쨩이 시끄러웠으니까 할 맘 사라졌었구」
소고는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열혈 역할 구상」에 대해 미츠키에게 상담했다. 미츠키의 충고를 듣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해볼게요」라며 자세를 다잡았었다. 그 뒤에 이어진 큰소리로 야마토를 깨우는 소고의 모습은 정말 희귀한 광경이었다. 뺀질대며 흘려넘기는 야마토에게 과감하게 덤벼들며, 소고는 아랫배로부터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평소의 소고는 그런 식으로 소리를 내지르지 않는다. 야마토가 「혹시 소우, 취했어? 조깅은 됐으니까 형아 옆에서 자도록 하세요」 라고 받아넘기는 바람에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실패한 소고를 보곤 미츠키가 웃으며 「신경 쓰지마」라고 했다. 소고가 진지하게 「네」 하고 답했다. 분투하는 모습과 평소 소고 사이의 갭에 리쿠나 나기, 그리고 이오리도, 소고를 둘러싸곤 웃었다. 다들 웃는 걸 보고 소고도 「열혈은 어렵네요」라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타마키는 웃지 않았다.
아주 조금, 가슴이 찌릿, 하고 기분 나쁘게 아파왔다.
소고는 타마키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땐 언제나, 언제나 봄바람에 살랑이는 꽃처럼 폭신폭신하게 웃고 있었다. 미츠키가 무슨 말을 하든지 조금도 화내지 않았고, 미츠키의 제안을 따르고,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고.
소고는 타마키에게 상담하거나 하지 않는다. 타마키를 의지하려 들지 않았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어도, 타마키는 그게 어쩐지 싫었다.
「그랬구나. 미안해. 그럼 나는 오늘밤부터 타마키 군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연습할게」
소고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곤혹스러워하며 사과해온다. 하지만 그건 달라, 하고 타마키는 생각했다. 타마키는 소고에게 사과받고 싶은 게 아니다. 불평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었다. 방해라는 말이 아닌데──. 그런 식으로 들렸던 걸까. 소고는 타마키에게서 기분 나쁜 말을 이끌어내는 게 특기라서. 깊이 생각하는 게 서툴고, 반사적이고, 생각한 걸 그대로 내뱉어 「심한 말을 해버리는」 타마키의 나쁜 점을 끌어내는 게 정말로 특기라서. 불퉁한 말을 내던지듯 뱉어버리고 타마키는 풀이 죽는다. 그 말을 들은 소고도 풀죽곤 했다. MEZZO"의 두 사람은 요만큼도 사이가 좋은 게 아니었다. 타마키의 눈 앞에서, 소고가 누구에게나 기꺼이 팔아주는 미소를 넣어둔 마음 속의 셔터를 쿵 하고 내려닫는 것만 같았다. 「오늘의 미소는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폐점합니다」하고 거절당한 기분이었다.
소고는 꺼낸 대본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타마키는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 그대로, 하지만 짜증이 치밀어올라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로, 뒤집어쓰고 있던 캡모자를 푹 눌러쓰곤 눈을 감았다.
그렇게 WEB 발신 방송 녹화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받은 대본을 각자 읽고 도착한 촬영 스튜디오에서 의상을 입은 야마토가 리쿠에게 말했다.
「형아 역시 이 꼴 이상하지 않아? 22살이 이제와서 고등학교 교복이라니 벌칙 게임 같은데」
방송 내 코너 중 하나인 미니드라마── 『아이나나 학원』. 어째서인지 야마토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게 된 거다. 감색 블레이저에 붉은 넥타이, 하얀 커터 셔츠.
「사이즈는 맞는 것 같아요. 야마토 씨, 잘 어울리시네요. 뭔가 거북하세요?」
리쿠가 진심으로 야마토에게 답하며 야마토의 교복 차림을 앞뒤로 살폈다. 찬찬히 살펴지며 야마토는 무슨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듯 하늘만 바라봤다. 야마토로서는 드물게도 부끄러운 듯 보였다. 리쿠의 천연스러움이 작렬했다. 이유를 설명하더라도 리쿠에겐 전해지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야마토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웅얼거렸다.
「미츠나 소우, 나기까지 선생님인데 왜 내가 학생이냐고……」
「아─, 그런 거라면 저도 신기하게 여긴 부분이 있어요. 왜 제가 가장 어린 역할인걸까요. 이오리나 타마키가 선배 역할이라니 이상한 기분이에요」
야마토와 같은 교복을 입은 리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릿군 후배였어?」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은 타마키가 「지금 알았어」라는 듯 리쿠에게 물었다.
「응, 맞아」
「알았어」
「요츠바 씨, 참고로 전 요츠바 씨의 동급생 역할이에요」
이오리가 확인하듯 타마키에게 말했다.
「헤─. 알았어」
이오리도 교복 차림이다. 소매에는 「학생회장」이라고 쓰인 완장을 찬 채로 검녹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쓴 사람에 따라서는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법한 프레임의 안경이었지만, 이오리의 청결한 느낌이 있는 정돈된 용모에는 무척 잘 어울렸다.
「타마키 군……. 대본 제대로 읽고 온거지?」
소고가 대화를 듣곤 걱정스럽게 타마키에게 물었다. 소고는 청색 계열의 쿨한, 조끼와 상하의를 갖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작고 단정하게 매듭지은 넥타이와 얇은 프레임의 안경을 착용한 채다. 성실해보이는 얼굴에 걸친 은녹색 안경이 소고를 평소보다 샤프하게 보이도록 해주고 있었다.
「응」
「읽고 대사도 제대로 외우셨습니까」
이오리도 다시 한 번 타마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입을 다문 타마키를 소고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동물처럼 사람의 기척에 민감한 타마키는 소고가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걸 눈치채고 말아, 가슴이 쿡쿡 쑤셔왔다.
「어─」
또 불안해보이는 표정을 짓게 만들어버렸다. 타마키는 소고에게 걱정을 끼치기만 한다.
말 없이 어색해진 MEZZO"의 두 사람 사이로 미츠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끼어들었다.
「소고는 선생님스럽네. 열혈은 아니지만. 수학 선생님 같아! 차분하고 상냥한 선생님이었다면 역할 만들기 안 해도 괜찮았을텐데!」
얼버무리는 듯한 말에 소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소쨩 선생님보다 밋키가 좋아」
타마키가 말했다.
「그래─? 뭐, 나도 선생님이지만. 가정 과목의」
미츠키는 선생님 역할을 맡았다는 게 만족스럽지만도 않은 듯 했다. 넥타이 차림이긴 했지만 위에는 정장이 아니라 유행을 타지 않는 느낌의 니트를 입고 그 위엔 하오리를 걸쳤다.
「……역시 왜 내가 학생 역할인지 모르겠어. 교복을 입는다고 학생으로 보일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형아 엄청 불안한데」
야마토는 다시 투덜거렸다.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OH!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교사처럼 보일지 불안합니다! 저의 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기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용모. 어떻게 하면 평범한 교사처럼 보일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교사가 있는 학교는 리얼리티가 없다고 시청자 분들로부터 클레임이 걸려오는 건 아닐지?」
나기가 검지로 뺨을 만지작거리며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목깃 부분을 넓게 열어젖힌 하얀 셔츠는 실크 재질인걸까. 다른 사람들의 셔츠와는 광택이 명백히 달랐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고, 정장도 기성품이 아니라 재단에 공을 들인 브랜드 제품 같았다.
「나기의 그 자신감엔 늘 감탄하게 돼」
미츠키가 아련한 눈이 되었다. 나기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멋진 선생님도 가끔 계시니까 괜찮아」
리쿠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나기는 입만 다물고 있으면 돼」
미츠키가 그 뒤를 이었다.
「리얼리? 미츠키, 하지만 저도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에 OH라든가 HEY 같은 거 붙이지 말고 애드리브 금지에 윙크 같은 것도 금지하면 괜찮지 않을까」
뭔가를 두려워하듯이 쭈뼛쭈뼛, 미츠키가 답했다.
「하지만 제 역할, 영어 특별강사입니다. OH도 대사에 들어있었습니다」
「……OH………」
진심으로 「OH」라는 탄식이 미츠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야마토가 곁에서 킥킥 웃고 있다. 이오리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타마키는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고, 소고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리쿠는 방실거리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던 스탭 무리에서 여성이 한 명 달려왔다.
「……저기, 죄송합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홍보용 단체 사진으로 왁자지껄한 느낌의 촬영 풍경을 몇 장 찍어서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싶어서요」
「네─. ……괜찮지? 매니저?」
미츠키가 스태프 측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츠무기를 눈으로 찾아 허가를 받아냈다. 츠무기의 동의 하에 의상을 입은 IDOLiSH7의 모두가 단체 사진을 찍을 카메라를 향해 웃어보인다. 포즈를 취하고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자니 여성 스태프들 사이에서 「꺄아─」 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기가 여성진에게 산뜻한 윙크를 보냈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전학생인 리쿠가 등교 첫 날부터 지각을 하는 바람에 빵을 입에 문 채로 학교까지 뛰어가는 장면이었다. 리쿠가 달려간다. 식빵을 한 덩어리 입에 문 채── 달리고 있었다. 한 덩어리의 빵이니 당연히 물기만 한 게 아니라 양손으로도 받쳐 든 채로 힘들어하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끊임없는 큰 먹이를 필사적으로 입에 욱여넣는 소동물과 같은 진지한 표정으로 의욕 넘치게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켜보던 이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타마키 같은 경우에는 스위치가 눌린 건지 폭소하고 있었다.
「……대체 왜 빵을 덩어리로 물고 달리는 걸까요. 그런 장면이었던가요」
소고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미안, 나야. 대본에 빵을 물고 달린다고 써있길래 이왕 빵을 물고 달릴거라면 맛있는 빵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갓 구운 빵을 사와서 뒀거든」
미츠키가 말했다. 갓 구운 빵이라 잘리지 않은 상태였다고.
「나중에 내가 잘라두려고 했는데, 그대로 잊어버렸어……. 설마 이렇게 웃긴 장면이 될 거라곤……」
리쿠, 목메이지 않으려나…….
연기에 대한 걱정과는 별개로 모두가 조마조마하게 리쿠의 촬영 풍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빵을 물고 달리는 리쿠와 모퉁이에서 이오리가 부딪힌다. 진부한 등장 장면이었다. 대본대로 모퉁이 저편에서 기다리던 이오리는 전력으로 달려온 리쿠의 「한 덩어리의 빵을 물고 있는」 모습에 퍽 동요했다. 이오리가 연기가 아닌 진짜 당혹감이 드러나는 놀란 얼굴로 움직임을 멈추고, 거기서 리쿠와 쿠당탕, 부딪힌다. 리쿠가 빵을 사수한 채 뒤로 넘어졌기 때문에 부딪힌 이오리도 뒤로 튕겨나갔지만 곧바로 발을 딛어 버티며 리쿠의 팔을 붙들곤 끌어당겨 지탱해주었다. 빵을 사이에 끼고 리쿠를 끌어안은 채 경악과 걱정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얼굴로 이오리가 말했다.
「위험하잖습니까. 어째서 앞을 보지도 않은 채로 빵을 물고 달리는 거예요. 당신은」
대본대로의 대사다.
「죄, 죄……죄송합니다앗」
이오리는 지척에서 들려오는 리쿠의 사과를 듣고서야 자신들의 거리가 대본에 써있던 것보다도 훨씬 가깝고, 끌어안고 있을 장면이 아닌데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당황한 듯 손을 팍 놓아버린다. 그 일련의 움직임이 묘하게 순진한 느낌이라, 사춘기 특유의 결백한 청년의 순정과 잘 어울리는 통에, 촬영을 바라보고 있던 모두가 「오」 하는 소리를 냈다.
「컷!! 좋은 장면 찍었구만. 좋네─. 두 사람 다 좋아─. 대본이랑은 다르지만 이 애드리브 쪽이 확실히 더 생생해. 이걸로 하지. 한 번에 오케이야」
감독이 신나서는 손뼉을 쳤다.
(이 뒤는 1월 4일 발매되는 「소설 아이돌리쉬 세븐 아이나나 학원」에서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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